F.A.

3 Dots 

▪ 바르셀로나 근교의 시골 마을에서 진행되는 오소나 아르티무르 페스티벌(Osona Artimur Festival)은 지역 주민들의 삶을 담은 벽화를 통해 새로운 장소성과 도시의 사회적 의미를 확장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 도시 예술 전문 센터 비-무랄스(B-MURALS)의 주도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는 세계 유수의 벽화 전문가들이 합류해 자연과 지역 주민과의 협력을 통해 공동체를 연결하거나 분리할 수 있는 힘으로서의 예술을 탐구했다. 

▪ 성공적인 도시 예술은 단순한 미적 장식이 아니라 시민의 창의력을 발현시키고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며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시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이 있다. 하나는 도시를 비어 있는 공간(space)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들은 비어가는 도시를 채우기 위해 계획을 수립한다. 멋진 건물과 새로운 광장을 지어 올린다. 공간을 좇는 사람은 어디선가 본 듯한 환상을 현실로 복제한다. 이때 도시계획가는 예술을 사용한다. 

 

반면 누군가는 오래된 도시를 정념이 스며든 장소(place)로 바라본다. 이들은 도시 안에 숨은 장소를 드러내기 위해 예술을 기획한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고 사라져가는 것을 기념한다. 예술가는 오래된 도시의 이야기를 수집한다. 그들에게 비어가는 도시는 아무도 다루지 않은 물감 박스, 곧 여백이 남은 캔버스와 같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공간과 장소, 두 논리의 충돌과 융합으로 형성된다. 그리고 우리의 예술은 공간과 장소 그 어딘가에서 부유하거나 표현된다. 여기 대립되는 갈등을 보여주는 두 도시가 있다. 첫 번째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지역의 오소나(Osona)다. 오소나는 천혜의 자연 경관과 전통이 융합된 지역이다. 전통적인 축산업으로 사람보다 돼지가 많다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바르셀로나의 도시 예술 전문 센터 비-무랄스(B-MURALS)가 찾아왔다. 그들은 조에르(Zoer), 아나 바리가(Ana Barriga), 사톤(Satone), 엘로이스 길로우(Eloise Gillow), 다니엘 무뇨스(Daniel Muñoz), 아이작 코르달(Isaac Cordal) 등 세계의 벽화 전문가를 모아 2022년 10월부터 11월까지 오소나 아르티무르 페스티벌(Osona Artimur Festival)을 개최했다.

비-무랄스(B-Mural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마테우 타르가(Mateu Targa)의 작품 © Fer Alcala
산트 바르토메우 델 그라우(Sant Bartomeu del Grau) 지역 내 라파엘 게를라흐(Rafael Gerlach) 작품 © Fer Alcalá

삶과 예술을 나란히, 오소나

예술가는 오소나(Osona) 내 총 5개 지역 프랫스 데 루산에스(Prats de Lluçanès), 만유(Manlleu), 산트 줄리아 데 빌라토르타(Sant Julià de Vilatorta), 산트 바르토메우 델 그라우(Sant Bartomeu del Grau) 그리고 알펜스(Alpens)에서 예술 작업을 진행했다. 이들은 대도시의 규율을 벗어나 삶의 영역 안에서 예술과 장소가 어떻게 조응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들이 상정하는 예술은 단순히 전문가가 흩뿌리는 도시 채색이 아니었다. 예술가 그룹은 지역 시민의 정신 건강과 중독 치료를 위해 활동하는 오소나멘트(Osonament)와 협업했다. 전문 단체와의 협업은 예술 안에 시민의 삶을 담아내고, 벽화 작업이 주민과 도시를 분리하지 않도록 안내했다. 오소나 아르티무르 페스티벌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히 오래된 도시를 채우기 위해 예술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술가 그룹은 오소나 아르티무르 페스티벌을 통해 예술 연구와 혁신, 홍보를 위한 새로운 장소성을 구축했다고 설명한다. 그들이 구축한 장소와 사람의 관계는 도시 경관에 표출된다. 그리고 경관은 도시의 분위기를 좌우하며 새로운 정체성과 사회적 의미를 생성한다. 도시의 빈 벽을 따라 새롭게 창조된 마을의 벽화는 열린 도시의 가능성을 취하며, 글로벌 관광객과 예술가, 지역 시민에게 새로운 영감을 부여한다. 새로운 장소 안에서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커뮤니티는 축소 도시의 외연을 새롭게 그려낸다.

 

예술이 만드는 변화와 가능성은 도시계획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행정가와 계획가는 도시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예술을 심어대기 시작했다. 사람이 모여야 하는 공간에 거대한 예술품을 심고, 건물의 유휴공간에 조형물을 배치하며 쓸모를 채운다. 그들은 공간에 예술 작품을 채우며 이를 공공미술의 확장이라 명명한다.

비-무랄스(B-Mural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웨도 고아스(Wedo Goas)의 작품 © Fer Alcala
지역 정신건강 지원 단체와의 협업 © Monika Pufflerova

조화로운 예술? 침투하는 예술?

인구가 감소하는 대한민국, 특히 축소 도시 부산에도 유사한 움직임이 존재한다. 그들은 도시의 공간을 채우기 위해 예술을 선택한다. <초량 살림숲>은 부산 동구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초량천 예술정원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우리동네 미술의 일환이었다. 지역 예술팀은 초량천 일대에 총 13개의 예술 작품 설치를 계획했고 그중 <초량 살림숲>은 부산 시민이 기증한 3,000여 개의 살림 도구를 활용해 높이 6m짜리 거대 조형물을 제작하는 사업이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구김살 많은 일상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러나 공공예술 프로젝트는 설치 첫날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초량동 일부 주민과 상인들은 이 작품이 초량천과 어울리지 않고, 관광지로서 주변 경관을 해친다고 비판했다. 지역 주민과 소통하지 않은 공공미술은 흉물로 해석되었다. 초량 살림숲은 머지않아 부산현대미술관으로 이전되었다. 가치를 품고 주민에게 기증받은 재료를 사용했음에도 지역과 소통하지 않은 예술은 모두 폭력적인 침탈과 같았다. 이처럼 최근 몇 년 동안 미술가, 행정가, 비평가들이 미술관에 놓인 오브제를 공공장소에 가져다 놓고 있다. 그들은 공공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의 상품성을 높인다. 어떤 면에서는 그저 예술을 이용하는 것이다. 

<초량 살림숲> 조형물 Ⓒ 시사저널 권대오

공동체에 기여하는 예술

도시 안에서 펼쳐지는 예술은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의 시선에서 시작해야 한다. 삶의 공간에 침투하는 예술은 공적(public) 공간에 대한 감각, 거주민에 대한 존중이 필수적이다. 장소란 무엇인가. “장소는 같은 경험으로 맺어지는 관계다(에드워드 렐프, 2005: 88).”  즉 지역 구성원이 예술 활동으로 상징과 의미를 공유하며 관계 맺을 때야 장소성은 형성된다. 예술 활동으로 형성한 장소와 공동체의 관계라면 경관에 표출된다. 

*에드워드 렐프, 『장소와 장소상실』, 논형, 2005 

 

에드워드 렐프는 장소를 이루는 세 가지 기본 요소를 물리적 환경, 인간 활동, 그리고 의미로 구성했다. 비-무랄스가 진행한 도시 프로젝트는 거리 예술이 어떠한 의미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자연과의 내밀한 일체성, 지역 주민과의 협력 체계를 보여주는 오소나는 획일화된 사고와 경직성을 보여주는 대도시를 벗어날 때 어떠한 예술적 가능성이 확보되는지 일러준다. 반면 힘의 논리로 배치하는 미술, 광범위한 스케일로 이루어지는 장소의 획일화는 우리에게 무장소성을 남긴다. 장소 경험이 빈약해지는 것이다. 예술은 사람을 연결하기도 하지만 분리하기도 한다. 예술의 기능은 도시를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예술가의 범주를 어디까지 형성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도시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을 통해 도시 예술의 가능성과 한계를 살펴보았다. 공간(space)으로서의 도시는 채워야 할 빈틈으로 인식되어 예술이 도구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초량 살림숲 사례는 지역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예술의 개입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준다. 이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단순히 미적 장식이나 도시 재생의 수단으로 축소하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반면 장소(place)로서의 도시는 삶과 기억, 그리고 정체성이 녹아있는 공간이다. 오소나의 사례처럼 예술이 지역 공동체와 소통하며 장소성을 형성할 때 도시는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이때 예술은 단순한 도시 채색을 넘어 사회적 대화의 장을 열고 공동체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매개체가 된다. 더 나아가 예술은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시민들의 집단 기억을 활성화하며 새로운 공동체적 가치를 창출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결국 도시 예술의 성패는 예술이 얼마나 장소와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하느냐에 달려있다. 예술은 도시 공간의 단순한 미적 오브제가 아닌,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고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는 매개체로서 나아가야 한다. 도시 행정가의 일방적 계획이나 예술가의 독단적 표현을 넘어,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직접적인 협력과 참여가 예술의 마지막 장이다. 예술이 진정한 사회적 실천으로서 기능할 때, 비로소 예술은 도시와 사람을 연결하는 강력한 매개체가 되며, 동시에 우리 시대의 도시가 직면한 다양한 사회적 과제들에 대한 새로운 통찰과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단순히 도시를 관광지로 만드는 마법이 아니다. 그보다는 내 삶의 세계를 스스로 창조하겠다는 적극적인 예술 표현이며, 단절되었던 이웃과의 관계를 다시 그려나가는 적극적 시도다. “예술은 도시 내부의 소집단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대중의 창조성을 드러내는(미셸 마페졸리, 2020: 183)” 효과적 방법이 된다. 보편 다수 시민이 예술로 도시를 창조할 때 공고했던 하나의 세계가 전복되고 진정한 의미의 페스티벌이 펼쳐지지 않을까.

*미셸 마페졸리, 『부족의 시대』, 문학동네, 2017